위헌·위법적인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동성로 광장에 모인 대구 시민들.
지난 2016년 '박근혜 국정농단' 촛불 이후 8년 만에 시민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을 손에 쥐고, 손수 만든 피켓을 들며 "윤석열 탄핵" 목소리를 높였다. 동성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곡 '광야에서', '아침이슬'과 삼성 라이온즈 응원가 '엘도라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부르며 민주주의를 외쳤다.
한파와 칼바람 속에서도 열기는 더 뜨겁게 피어올랐다. 해를 넘겨 춘삼월 봄이 찾아와도 정의를 부르짖는 시민들의 외침은 변함없었다.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파면까지 123일, 광장을 지켰던 시민들의 얼굴은 기록으로 남았다.
<평화뉴스>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동성로 일대에서 진행된 26번의 윤석열 전 대통령 퇴진 대구시국대회를 취재했다. 지난해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부터 대구경북지역 91개 단체가 모인 '윤석열 퇴진 대구시국회의'가 시국대회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시국대회가 26번이 열리는 동안 연인원 11만여명이 모였다.
12월 4일 1차 시국대회.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스스로 해제한지 만 하루만에 동성로 광장에 1,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시민들의 분노는 "내란범 윤석열 탄핵", "윤석열 체포"라는 구호로 터져나왔다.
시국대회 사흘째인 12월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이 부결됐을 땐 탄핵안 표결에 앞서 퇴장한 국민의힘을 "내란 공범"이라고 규탄하며 탄핵 응원봉을 흔들었다. 시민들은 동성로 CGV대구한일 앞에서 국민의힘 대구시당까지 행진하고, 당사를 에워싸며 "탄핵에 동참하라"고 외쳤다.
12월 14일 10차 시국대회에 모인 시민들은 국회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환호했다.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며 "국민의 승리", "만세"를 외쳤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시민 수는 주최 측 추산 4만여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 넘어간 이후 광장의 요구는 "윤석열 체포"가 됐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 달 넘게 수사를 못하고 있는 수사기관을 비판했다. 1월 4일 새해 첫 시국대회에 모인 시민들은 윤 대통령 체포 불발에 분노하며 "즉각 체포"를 외쳤다.
14차부터 25차까지 주된 의제는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탄핵 인용이었다. 긴 겨울을 광장에서 보낸 시민들은 계절이 한 번 바뀔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4월 4일, 넉달간의 긴 여정은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라는 한 마디로 절정에 달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목소리에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임기 5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파면됐다. 응원봉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며 목소리를 냈던 시민들이 거둔 값진 승리였다.
대구시국회의는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사회대개혁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실천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대구의 변화를 위해 지난 4개월간 시민들이 외쳐왔던 목소리들을 어떻게 모아낼 것인가에 대해 여러 방안을 논의 중이다. 민주주의를 지킨 광장의 힘으로 '사회대개혁'을 이룬다는 취지다.
이길우 '윤석열 퇴진 대구시국회의' 상임공동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여성이나 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 등 차별을 받아온 시민들이 탄핵을 넘어 사회를 바꿔내자는 염원으로 시국대회에 모였기 때문에 이뤄낸 결과"라며 "제6공화국 출범 이후 38년간 보수 양당 체제가 공고화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보다 서로를 비난하는 형식으로 흘러갔다. 사회대개혁은 소수자의 목소리도 실제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성종 상임공동대표는 "대구를 보수의 중심지, 보수의 도시라고 이야기하지만, 시민들이 표현하지 않았을 뿐 윤석열 정권의 부도덕성에 대한 의식들을 가지고 있었다"며 "12월 3일 이후로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만명씩 시국대회에 나와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역 시민사회에서 광장을 어떻게 만들어내냐에 따라 대구의 보수적인 색채도 점점 옅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대구의 변화를 위해 시민들이 광장에서 외쳤던 목소리를 모아내고, 의제화하는 과정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지혁 집행위원장은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면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라며 "민주주의는 강력한 힘이나 제도를 통해 지켜진다기보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를 통해 확장되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대개혁이라는 과제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TK의 보수 콘크리트는 절대 한꺼번에 부서지지 않는다"며 "담쟁이덩굴처럼 수십년 동안 하나하나 정복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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