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들은 기사거리가 없으면 목이 탄다. 연이어 없을 때는 오후 회의가 두려워진다. “오늘 뭐했나?”로 시작할 데스크의 추궁이 어른거린다. 그래서 기사거리가 없으면 통계자료를 들추면서 기획기사를 만들곤 한다. 그 옛날 어떤 기자는 기사거리가 없어서 길거리 쓰레기통을 뒤엎어 어지럽게 해놓고는 시민들의 ‘공중도덕 실종’을 탓하는 기사를 썼다고, 수습기자(1978년)일 적에 어떤 선배가 사실인지 아닌지 그때도 불분명했지만 기사거리에 대해 그렇게 말하기도 했었다.
요즘은 기사거리가 너무 넘치는 것같다. 대선을 앞두고 물론 정치관련 기사이지만. 어찌 이다지도 많은 뉴스메이커들이 따끈한 기사거리를 제공해줄까 놀랄 정도이다. 기자들에게는 이들이 기사거리를 적극 지원하는 고마운 분들임에 틀림이 없다. 더구나 이들은 뉴스밸류가 아주 높은 분들이 아닌가. 더구나 이렇게 높은 분들이 내놓는 뉴스거리 또한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이 아니어서 더욱 뉴스밸류를 높이는 게 아닌가. “(개가 아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격언처럼 상식적이고 평범하면 뉴스가 안되지만 특이하고 비상식적이면 뉴스가 되고, 그 정도에 따라 뉴스밸류 또한 비례해서 올라가는 게 아닌가.
신문기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하루하루 읽을 게 너무 많다. 챙겨두고 싶은 자료도 너무 많다. 어떤 날은 일어나 아침먹고 바로 인터넷앞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오후에는 티비를 보면서 MBC 저녁뉴스까지 가기도 한다.
정치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언행 하나하나가 기사거리가 되고 있는 요즘, 실감나는 정치의 계절이다. 이번 대선은 현직 대통령이 임기가 2년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크나큰 기사거리를 제공하는 바람에 발생했다. 국회의 탄핵, 헌재의 인용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여야 정치지도층 인사들은 저마다 크나큰 기사거리를 넘치게 쏟아냈다. 그후 지금까지도. 밤잠을 설칠 취재기자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기사화하면서 보람이라도 있다면 다행이겠건만….
대통령이라는 직분의 대한민국 정치의 정점에 계신 분이 왜 국민에게 갑자기 계엄령을 선포하는 비상식적인 처사로 막대한 국정혼란과 국가예산낭비를 초래하게 됐을까? 지금은 잘못을 인식하고는 있을까? ‘계몽령’과 같은 어휘로 눈을 흐리게 하면서 아직도 ‘어게인’을 획책하는 어리석음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국무총리는 내란추종 책임에서 비껴갈 수 없는데도, 대행을 맡은 책무 또한 막중함에도 자숙은커녕 다음 대행에게 넘기고 대선후보 단일화를 운위하며 정치에 왜 뛰어들었을까? 이같은 총리의 처신으로 생산되는 뉴스가 정상적인 가치의 뉴스일까?
여당인 국민의힘은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대선 일정이 정해지면서 대선후보로 나서게 되는 것은 이해되지만, 일부 후보는 탄핵을 찬성하며 반성하는 자세로 부끄러움을 표하는 반면, 일부 후보는 어깨를 펴며 줄탄핵 등을 앞세워 계엄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탄핵 반대와 헌재의 기각을 강하게 외치며 잘못이 없다는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그래도 되는 것인지? 대선후보로 선출되면 단일화하겠다고 수차 약속한 후보의 선출 이후의 처신, 단일화를 믿었다며 사퇴한 대행의 처신, 당지도부 인사들이 벌인 경선을 통해 선출된 대선후보에 대한 후보 교체 소동, 경선에서 탈락한 뒤 탈당한 후보가 당지도부를 향해 뒤늦게 퍼붓는 비난, 나라 망치고 당도 망쳤다며 ‘천벌을 받아라’는 막말을 지금 하면 무얼하며 그랬다면 왜 진작 하지 않았는지? …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하루하루 내놓는 차고 넘치는 기사거리들은 하나하나 기가 막힌다.
정상적이었다면 2년뒤 대선을 준비하게 됐을 야당의 대선후보 및 지도층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는 게 맞을 것 같다. 원인제공자인 국힘에 비해 계획대로 안정감있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사법부의 수장 대법원장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선과정을 보면서 국민의힘의 자폭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사법 최고 지도급인사라는 자체만으로도 뉴스밸류가 매우 높은 분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해도 가만히 있던 분이 야당대선후보의 대법원 상고심을 이유로 대선에 적극 끼어들어 왜 그렇게도 빠른 기일에 그것도 파기환송을 하였을까? 대선 전에 유죄확정을 받게하면 대선후보자인 당사자는 대법원의 권위에 수긍하고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고 국민의힘 후보가 자연히 당선될 것으로 판단했을까? 대법원장의 이해하기 어려운 개입에 현직판사들은 가만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선포는 필요충분요건을 갖추지못한 불법의 내란행위로서, 탄핵 및 파면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서도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계속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정부 여당 정치인 중에서도 일부 대선후보를 비롯해 일부 뜻있는 정치인은 그때 대의를 위해 탄핵에 찬성하고 파면을 받아들였다.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더라도 그것은 궤변이 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선포는 인정받지 못한다. 기사거리가 없어 목이 타더라도 나라를 불행하게 만드는 지도층의 이같은 기사거리 제공은 무모한 일이다. 대법원장까지 뉴스메이커로 가세하여 혼란을 주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민주언론의 사명 또한 올바른 정치의 구현과 사회정의 실현으로 민주복지사회를 건설하는 게 아닌가.
모든 직업생활인은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정치인 정치지도자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할 일을 바르게 수행해야 함이 옳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 2,500여년전 공자의 말씀이다. 뉴스밸류 높은 정치지도층이 명심할 부분이다. 그래도 바르게 나아가고 있는 것같아 희망적이다.
[유영철 칼럼 42]
유영철(兪英哲) / 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언론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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